가십걸
- Manager
- 3일 전
- 2분 분량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오래된 드라마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날.
딱히 그리운 인물도 없었고, 누군가 추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절 밤을 새워 보던 드라마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2007년작 드라마 가십걸.
세상이 조금은 단순하던 그때, 이 드라마는 상류층의 비밀과 청춘의 욕망을 유혹처럼 던져줬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완벽해 보이는 고등학생들이 패션쇼처럼 등교하고 모든 스캔들은 익명의 블로거 '가십걸' 의 게시물로 세상에 까발려진다.
처음엔 그저 화려한 옷, 화끈한 연애,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건 단순한 십대 드라마가 아니었다.
세레나, 블레어, 척 그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빛나지만 어딘가 불안한 세레나. 모든 걸 컨트롤하려 하지만 사랑엔 약한 블레어.
그리고 누가 봐도 '문제아'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 깊은 척.
거기에 평범한 배경에서 자란 댄과 제니가 섞이면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부자들의 연애질' 이 아닌 계급, 관계, 가족, 자아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던진다.
블레어의 "Three words, eight letters, say it and I'm yours" 같은 대사는 지금 봐도 소름이 끼친다.
대사 하나, 눈빛 하나에 캐릭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나' 보다 중요한 건 그 뒤의 감정
처음에는 그냥 재밌었다. "또 누구랑 사귀었어?", "이번엔 누가 가십걸이야?"
하지만 몇 화, 몇 시즌을 지나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이들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스캔들은 그저 배경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상처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성장하는가다.
첩보극도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몰입된다.
특히 외로움과 소외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가 꼭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다시 꺼내 보니,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
당시엔 보지 못했던 '어른들의 세계' 도 이젠 더 선명히 보인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주는 상처, 가정 내 권력 다툼, 어른들의 비겁한 선택.
아이들의 잘못은 때로 어른의 복사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가십걸은 그냥 젊은이들의 유희극이 아닌 불완전한 세계에서 나름의 윤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리부트? 괜찮지만, 원작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2021년 리부트도 봤다. 다양성을 반영했고, 시대에 맞춰 변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리부트는 '가십걸'이라는 껍데기를 썼을 뿐, 감정의 깊이나 서사 구성은 확실히 달랐다.
오히려 원작의 섬세한 감정선과 캐릭터들 간의 미묘한 관계들이 지금 다시 보니 더 찬란하게 느껴졌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의 이야기
가십걸은 뉴욕, 패션, 블로그, 스캔들, 사랑. 그 모든 걸 흥미롭게 담았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시절의 우리는 이들을 보며 어른이 되는 법을 어렴풋이 배웠고 지금의 우리는 다시 보며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You know you love me"라는 마지막 인사는 단지 작별 인사가 아니라, 어쩌면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때 그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